비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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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쿨에 모인 회원들의 수가 예닐곱 명이었다. 역사상 가장 적은 숫자라고도 했다. 폭염 탓인가? 스쿨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정적을 깨고 스쿨로 들어온 초급 팀장님은 홈피에 올린 나의 비행일지에 대해 언급하셨다. (보잘 것 없는 나의 비행일지를 읽어주고 관심을 표명해준 박광진님께 감사드린다.) 요지는 '영혼의 숨결' 이라는 용어 선택이 비행일지의 목적에 부합하는가?였다. 사무장님의 의견에 따르면, 비행일지는 비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해보는 것이기에 일정한 형식이 없고, 무엇을 어떻게 쓰든 타자가 비판할 바가 아니라는 코멘트로 홍삼님의 의구심을 일축하셨다.

 

  그러면서 사무장님의 비행일지를 보여주셨다. 시간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손바닥만한 비행일지에 비행에 대한 사무장님의 생각과 느낌이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글씨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성실함, 꼼꼼함, 인내심 그리고 꾸준함......내가 알고 있던 사무장님에 대한 선입견이 일시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사무장님이 털털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사무장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무장님의 얼굴이 광채로 빛나 보였다.

 

  적은 회원 수로 인한 실망 탓인지 비행 일정에 관한 짱님의 안내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남풍이므로 구지 대니산의 남풍이륙장으로 출발했다. 남풍이륙장은 이미 2번의 비행 경험이 있는 장소이기에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지난 번의 반으로 삭감되어 있었다. 휴! 다행이다.

 

  오늘 첫 번째 비행이다. 착륙장에 있는 사무장님이 무전을 넘겨받으면서 나의 비행상 결함은 하나 둘씩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첫째, 착륙장 방향으로 직선 비행해야 하는데 나의 몸과 기체가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반복하면서 불안정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사무장님은 나의 시선이 먼 전방이 아닌 발끝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어 주셨다. 둘째, 착륙장에서 착륙지점을 설정하고 전방으로 방향을 응시하면서 비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땅을 쳐다보면서 착륙하고 있었다. 내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자면, 착륙할 때 지면과 내 몸의 공간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 줄곧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덧붙여, 착지할 때 다리가 꺾여질까 봐 살짝 불안하였다. 사무장님은 '방향 설정'을 거듭 역설하면서 착륙 시 100% 견제만 제대로 한다면 땅에 부드럽게 착륙할 수 있으니 견제에 좀 더 신경 쓸 것을 당부하셨다. 셋째, 배풍이 아닌 정풍 착륙이 정석이고 나의 착륙 자세와 방법은 바람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하는 '제멋대로' 착륙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륙장의 짱님 무전으로 다시 대니산으로 올라갔다. 오늘의 두 번째 비행이다. 이번에는 사무장님의 피드백에 따라 멀리 전방을 주시하며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했다. 전방뿐만 아니라 좌우도 주시하면서 근처에 장애물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착륙장 근처까지 날아갔다. 착륙장을 앞두고 도로를 전방에 두고 있을 즈음 사무장님이 오른쪽으로 360도 회전해 보라고 하셨다. 처음에 내가 서서히 견제하고 있으니까 좀 더 빨리 과감하게 견제하라고 말씀하셨다. 한바퀴 돌았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360도 회전하라고 하셨다. 왼쪽 회전도 성공했다. 

 

  다시 오른 쪽으로 360도 회전을 시도하려는 찰나, 갑자기 몸이 훅 들리더니 기체가 불안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내 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일어날 사고에 대해서 아무런 예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려움도 없었다. 나를 안전하게 땅으로 이끌어 내려줄 두 분이 내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람? 사무장님과 짱님은 번갈아가며 또는 동시에 '만세'를 외쳤다. 이때 나는 만세만 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감에 견제도 동시에 취한 것 같았다. 다시 만세를 할 즈음, 이미 내 머리 위의 산줄은 방향을 엇갈려 틀면서 꼬이고 기체는 접히면서 아래쪽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과 하강을 거듭하고 있었다. 마침내 내 기억의 필름이 끊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지난 주 복사마배 대회장의 본부였던 언덕배기의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는 마을 입구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이제 막 비행 훈련을 시작한 이형원씨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 어떻게 내가 여기 있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얼굴 전면에 풀잎이나 나무 부스러기 같은 것이 묻어 있고 왼쪽 손등에 멍이 들어 있는 것 빼고는 아무런 사고의 흔적도 없었다. 명치에 약간 아픈 정도의 통증만 있었다. 어떤 얼굴 표정과 자세로 내가 추락을 했으며 어디에 추락했는지, 그리고 추락 장소에서 내가 어떻게 여기로 운반되었는지, 누가 나를 구하러 왔는지에 대해서 난 아무 것도 몰랐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사무장님, 초급 팀장님, 이형원씨가 다급히 나에게로 달려와 주었다고 하였다. 나는 마을 입구의 과수원에 떨어졌고 다행히 착륙 당시에 캐노피가 펼쳐져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잃어서 몸에 힘이 빠진 것도 내 몸을 보호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하였다.

 

  나는 오늘 내가 한 방 먹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것을 계기삼아 다음에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짱님과 사무장님의 분석에 의하면, 내가 회전을 할 때 주변에 약간의 열 기류가 있었다고 하였다. 통상 그럴 때에는 '만세'를 하여 열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견제를 준 것이 화근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열이 나를 받아친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나는 네거티브 회전(짱님 말씀으로는 스파이럴의 경우 굉장히 빠른 회전이지만 네거티브는 완만하고 크며 느림)을 하고 있었다. 이럴 경우, 비상 국면이다. 100m 정도에서 네커티브 회전이 시작되었다. 아직 비상 낙하산을 펼치기까지는 50m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훈련된 조종사의 경우, 이럴 때 다시 제대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최고의 기술과 최선의 전략을 동원해 기체를 안정된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50m 지상 마지막 보루에서도 비행 응급 처치가 안 된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비상 낙하산을 던지는 것이 비행의 정석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비행 걸음마 단계에 있었고, 그에 걸맞게 행동했다. 비상 시 도전 의식과 비행 응급 처치 행동은 내게 비현실적인 먼 나라 얘기였다.

 

  나는 스스로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유학 생활 때도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혼절했고, 사경을 헤매면서 응급 수슬을 받았다. (그로 인해 나는 불임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은 계속되었고 지금까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그리고 그저께 또 다시 의식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깊은 수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기분이 개운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았지만, 손등의 멍 말고는 내 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나는 해외여행을 워낙 좋아해서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다치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는 없었다. (반면, 나는 로또복은 없다. 그래서 절대로 추첨, 당첨 이런 것들에 현혹되지 않는다. 내 삶의 철칙은 '내 힘으로 공들여 얻는 것만이 가치롭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짱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겸손하신 짱님께서는 그것이 나만의 복이 아니라 '짱님의 운이요 복이라'고 하였다. 패러글라이딩 스쿨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항상 걱정하는 것이 회원님들의 건강과 안전인데 지금껏 큰 일 없이 지나온 것에 감사한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울 짱님, 짱 멋있어!) 그러면서 오히려 안 다친 내게 감사한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공동체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어둠에 가려 희미하게 비치는 짱님의 옆얼굴이 오늘 따라 더 듬직하고 카리스마 향기까지 풍긴다.

 

  점심을 먹고 짱님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에게 다시 비행하라고 말씀하셨다. 결론부터 앞지르자면, 역시 짱님의 전략이 지혜로웠다. (그래서 난 의무와 배려의 짱! 짱님을 존경한다!) 솔직히 말은 안 했지만 크게 한 방 먹고 난 뒤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고 비행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내 안에 자라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을 때도 (음식을 남기는 것을 싫어하고 평소 식욕만틈은 잃어버린 적이 없는 나인데) 비빔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도 내 안의 비행 혐오 독버섯이 싹을 틔고 있나 보았다.

 

  오후 비행 때는 사무장님이 이륙장에서 출발을 점검하고, 착륙장에서 짱님이 회원들의 착륙을 도왔다. 착륙장 가까이 왔을 즈음, 짱님이 한 쪽 발로만 엑셀라이터에 걸어보라고 나에게 지시했다. 나중에 짱님의 설명에 의하면, 통상 엑셀라이터를 밟으면 4~5km의 가속이 붙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속력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견제를 한 상태에서 엑셀라이터를 밟았나보다.

 

  "오늘 비행이 몇 번째죠? 재미있나요?"

  오후 두 번째 비행을 위해 대니산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고급 팀장님께서 물으셨다.

  "글쎄요......오늘 한 방 맞았어요."

  나는 (마치 어리광부리듯) 손등의 멍을 보여드렸다.

  "글쎄요......가장 심한 상처라고 내게 보여주었을 텐테 그 정도면 아무 것도 아닌데......"

  나중에 착륙장에서 다시 만난 고급 팀장님이 오늘 사고에 대해서 재차 물으셨다.

  "기절했다가 가까스로 다시 살아났어유 ㅠㅠ"

  "허허허! 그럼 오늘이 생일날이군요. 해피벌쓰데이 투 유!"

  고급 팀장님의 유머와 센스에 나의 첫 사고는 환영할만한 것으로 탈바꿈했다. 오늘 나는 이미 safety training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도 언젠가, 나의 비행 실력이 본선 궤도에 오르면 safety training 교육에 꼭 한 번 참여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의 목숨은 온전히 내 몫이니까'. 장차 융프라우에서 하늘을 품는 그 날까지 나의 도전과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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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삼 2016.07.25 17:13
    정말로 다행이네여...
    좋은 경험 하셨는데...2번은 하지 마세여..ㅎ
    스쿨에서 애기 한 것은 농담이고여...
    이렇게 비행일지 쓰시면 됩니다...ㅋㅋㅋ
    잘 읽고 갑니다....무조건 안전하게 비행 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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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하산 2016.07.25 21:22
    안녕하세요
    이판석이라고 합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착륙하시고
    잘한다고 했을때 저에게 한방 맞았다고 하면서
    무서웠다고 하셨는데
    나는 오전에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단순히 한쪽이 무너지는정도 였을거라 생각했고
    무서워말고 살아있는쪽에 견재만하면 회복되니
    신경쓰지말라고 했는데
    네가티브까지 걸린줄은 몰랐네요
    아마 그이후 오후에 비행을 하지않았다면
    본인에게 비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원히 남았으리라
    생각되네요
    그것을 극복시키기 위해서 스쿨장님께서 오후 비행을
    감행하신것 같습니다
    옛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지요
    비행에 있어서는 비행자와 유도자의 소통은 오로지 무전기만이 전부입니다
    초보 비행자는 유도자의 무전에 항상 귀기울이고 따라주기만하면
    안전합니다
    한가지 말씀드린다면
    비행은 비행에서 일어날수있는상황을 연습하기가 쉽지않습니다
    그래서 스쿨에서는 이론교육을 하고있는줄압니다
    답이없는 문제는 없듯이
    어떻게 어떤원리로 비행이 되는지를 먼저 알아두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이론교육이 있는날에는 꼭 참석하셔서 받아두시면 비행에 아주 큰 도움이 될겁니다
    아무튼 다행이고요
    아마 하늘이 더큰 더멋진 파일럿이 될수있도록 당금질을 한번했나봅니다
    앞으로의 스칼렛씨의 멋지게 비행 하는모습 기대해봅니다
    항상 안전비행 하세요 ..
  • profile
    지니킴 2016.07.26 12:56
    생각보다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네요 기절까지하시다니 별로 안 다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 profile
    남선달 2016.07.27 11:47
    이곳 빅버드에서 기절은 나만 하는줄 알았더만 2호가 탄생 하셨네....!! ^^
    이거 자주 하시면 안됩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