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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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16:03

적난운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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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여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

십여년전에 리그전에서 적난운을 직접 경험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일지에 올립니다

일지를 보며서 구름(적난운)의 위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일     자 : 2008.09.07(일요일)     
지     역 : 평창 장암산(717m)          총비행횟수 : 895회
기 체 명 : Boomerang5-08         
비행거리 : 63km                    
비행시간 : 03:32        
최고고도 : 3,600m                 
최대상승율 : 12m/sec(귀접기)        
최대하강율 : -11m/sec
 
 
오늘은 평창 리그전 3차전 마지막 날이다. 첫날은 개인적인 일로 출전을 못했고, 어제는 대회가 성립이 되질 않아서 현재까지 하위권 점수에 머물고 있는 나에겐 약간의 부담이 되었다. 오늘 만이라도 날씨가 좋아서 새로 교체한 애마(Boomerang5)로 센놈 들과 한판 붙어야지 하는 맘으로 이륙장으로 올라간다...
 
나의 맘을 아는지 기상은 좋았고 이륙 바람도 괜찮았다. 먼저 장비를 셋팅하고  오늘 타스크를  기다린다.  분명  난코스가 있는 긴 타스크로 예상된다. 나름대로 우리팀은 지도를 펴고 지형 분석도 해보고, 장비도 체크 해 본다.
 
이윽고 대회 브리핑이 시작된다.
Task Distance= 63Km, Task Type= Race To Goal, Start Time= 13:30,
Task Point = P19→P13→P20→P07→P13→P12→P20(Goal). 예상대로 장거리에  난코스가 두군데나 있다.  그리고 앞으로 P12에서 일어날 엄청난 상황을 전혀 예측도 못하고, 나는 침착하게 GPS에 좌표를 순서대로 입력한다.  

드디어 게이트 오픈, 열을 감지라도 한 듯 일부 선수들은 이륙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나도 비장한 각오로 이륙한다. 앞서 이륙한 선수들은 높은 고도에서 원을 그리면서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나도 우측 능선에서 비좁은 공간을 헤쳐 가며 고도를 확보한다. 어느덧 고도 1600m에 올라서고 내 앞으로 엷은 구름이 다가온다. 나는 시합규정에 따라 양쪽 팁을 접고 앞으로 빠져 나와,  Start Line 근처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린다.                                           
 
13:30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일제히 선수들은 1포인트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나의 애마(Boomerang5)도 그 대열에서 열심히 질주하고 있다. 나는 엑셀레이터에 발을 올리고  30%정도   밟아 본다. 가속도가 좀더붙고, L/D 또한 옛날에 타던 장비에 비해 월등한 차이감을 준다.하지만 그렇게 많은 적응 비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긴장 속에서 골까지 완주에 목표를 두고 침착하게 안전비행 하기로 맘을 가다듬는다.
 
오늘은 1600m정도에서 구름이 지나가고 있어, 더 이상 고도확보는 별 의미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1500m정도의 고도에서 다음 포인트로 별 어려움없이 공격할 수 있었고, 문제는 P12포인트 가는 것이었다. 예전 대회에서도 엄청나게 고생을 했었고, 실패했던 포인트다. 오늘은 남병산(P13)에서 1800m 고도확보 하기로 맘먹고 상승 열을 찾았지만 1300m에서 더 이상은 없다.
 
그 때!  나보다 한참이나 높은 고도로 한 그룹이 지나가고 있는걸 보니까  마음이 다급해진다. 더 이상은 시간 낭비일 것 같아 엑셀레이터를 밟고 다음 포인트를 향해 출발한다. P12포인트 1km지점 도달했을때고도는 낮았고, 근처에는 구름이 가려져 있었고, 시간은 15:30분경  앞서가던 선두 그룹들도 바닥에서 헤메고 있고, 나는 더이상 큰 써멀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주위를 핥다시피 하면서 써멀을 찾고 있던 중 약한 써멀이 하나 걸려든다. 나는 여기서 승부를 걸기로 하고 돌리고 또 돌렸다. 어느덧 고도는 1300m에 올라서고, 써멀도 부드럽고 상승율도 더 좋아지고 있다. 먼저 착륙한 우리팀원들(동일,성호,종섭), 경식씨와 잠시 농담도 주고받고, 최선을 다해서 골에 들어오라는 격려의 메세지가 무전으로 날아왔다.
이윽고 고도는 1600m 넘어가고 있고, 구름도 가까워 온다. P12 포인트로 출발이다. 이때 갑자기 상승율이 4.0m/sec이상 올라가면서 글라이더가 흔들거린다. 난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로 글라이더를 안정시키기에 바빴고, 이러는 중 글라이더는 구름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때도 난 시합규정에 따라 양쪽팁만 접고 정풍방향으로 버티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구름이 걷히겠지 하면서...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썬더스톰에 진입했다는걸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알았거나 시합만 아니었더라도 난 그전에 스파이럴로 고도처리 했을것이다.(그전에도 외국에서 썬더스톰에 빨려 들어간 사고사례를 여러번 이야기 들었던 터라 조심을 해야 한다는것을 항상 숙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름은 갈수록 잿빛 색으로 짙어지고, 갑자기 바리온 톤이 미친듯이 울어대고, 글라이더가 튕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온다. 그때서야  나는 썬더스톰 코아에 들어왔다는 것을 판단했고, 내게 처해진 현재 상황을 인정할수 밖에 없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쳐온다. 이 상황을 빨리 탈출을 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스파일럴을 시도 하기로 하고 접고있던 양쪽팁을 풀기위해 힘껏 여러 번 펌핑을 했다. 양쪽팁이 펴지면서, 또 한번 튕겨 올라가더니 한쪽날개 접혀 들어와 라인 사이로 감긴다..크라밧이다
 
그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내 머리속으로 반대편 체중싣고 브레이크 어떻고 저떻고 스쳐갔지만, 내 몸은 따로 트위스트를 추고 있었다. 그리고 회전이 들어간다. 하강이 아니고 상승하면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회전을 하고있다. 머리속엔 기체가 정신없이 돌고 있는것 처럼 느껴지고, 기체가 내 위에 있는지, 내가 기체 위에 있는지 구분이 안되었다. 방향,균형감각이 전혀 안잡히는 듯 했다. 그순간 나는 두려움 보다는 살아야 겠다는 긴박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반대쪽 날개 팁 라인을 완전히 당겨 어느정도 중심을 잡았다..
 
그것도 잠시  바리오 톤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을 내고 있었다.  최고 톤에서 거의 멎은듯한 소리, 정말 기분 나쁘고,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기체의 양쪽팁을 완전히 접은 상태에서 12m/sec상승율로 계속 하늘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무섭고 싫었다. 다시 한 번 침착하게 대응하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뭐를 우선으로 조치를 해야 하는가를 짧은 몇초에 생각 해야만 했다. 그래 우선 정확한 방향을 잡고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순간 머리속에 P12포인트가 생각이 났다.
 
근데 내 발라스트에 장착되어 있는 두개의 GPS 와 지구 나침판에 화살표가 모두 빙빙돌고 있다. 미친듯이 날뛰는 내 하네스에서 GPS방향을 확인 한다는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난 암흑 속이지만 시야를 넓게 멀리 볼려고 애를썼다.  양쪽 팁을 접었기 때문에 몸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한 방향으로 갈려고 애를 섰지만 기체는 그 두터운 상승열의 벽을 둟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하늘로 빨려 올라가고 있다.
 
기체의 날개 기능은 거의 상실한 것 같았고, 펄럭거리는 천 조각에 매달려 안떨어질려고 바둥거리는 내 모습이 불쌍하다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쓰~발!! 깡이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 어금니를 세게 깨문 탓인지 몇일동안 아구가  얼럴럴 했었다...
 
GPS고도가 3000m를 넘어선다. 얇은 티셔츠에 스피트암을 걸친상태, 갑자기 몸이 비에 맞은 것처럼 축축 하면서  초겨울 날씨정도의 춥다는 느낌이 왔고, 나는 순간 비행복을 입지 않았던 것을 후회가 되었다. 갑자기 고글에 뭔가 달라 붙은듯한 전혀 보이질 않아  고글을 벗어 던져 버렸고, 이미 장갑과 산줄에는 하얀 서리가 달라 붙어있었다. 지난해 호주 오픈대회에서 썬더스톰에 9000m 이상 빨려 들어가서 극적으로 생환한 독일 에바선수와 도중에 동사한 중국선수가 순간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갑자기 두려움이 앞선다. 도대체 끝이 어딜까? 보이지는 않지만 저 구름 꼭대기 어딘선가에서 꽁꽁 얼어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너무 끔찍하다. 그순간 나는 저 꼭대기 까지 도달 하기전에 뭔가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잡고있던 양쪽 산줄을 놓고, 보조 낙하산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던질 타이밍을 기다리면서,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를 짧은 몇초간에 다시한번 고민한다. 만약에 더 높은 상승력에 기체가 못이겨 찢어지거나 산줄이 터지면 그때는?
 
지금 이순간 나에게는 보조 낙하산이 마지막 희망인데..... 그래! 지금은 아니다 라고  마음을 굳힌다.......내 엉덩이 밑에 부착되어 있는 보조 낙하산이 나한테 이렇게 힘이 될 줄이야. 이젠 약간의 여유마져 생기는듯 했다. 계속해서 바리오의 굉음은 그칠 줄 몰랐고, 여전히 기체는 통제가 안될 정도로 난리친다. 그 순간! 내 눈에서 아주 작은 구멍 하나가 보이는 듯 했다.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처럼, 그 구멍은 파랗고, 깊게 보였다.
 
그것은 땅이였다. 그제서야 나는 암흑 속에서 빠져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내 주위를 살펴 보았다. 나 한테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거대한 산봉우리 처럼 생긴 적난운이 여기저기 하늘로 솟아 있었다. 다행이도 나는 제일 낮은 구름위로 빠져 나온 것이다. 만약에 조금만 옆쪽으로 들어갔더라도, 지금보다는 수천미터 더 높이로 올라갔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그 구름 쪽에서 완전하게 벗어 날려고 애를 썻고, 그 때 까지도 상승과 하강에  기체는 정신없이 흔들어 대고. 마치 내 뒤에 큰 구름이 계속 나를 쫓아 오는 듯한 느낌이였다. 나는 산 줄에 꼬여 있던 양쪽 팁을 풀기위해서 풀 스톨에 가깝도록 브레이크를 코드를 몇 번이나 당겼다 놓기를 했었고, 그 때 마다 꼬여 있던 양쪽 팁은 조금씩 풀어졌다. 그제서야 나는 기체를 안정 시키고, GPS에 내 위치를 확인했다. 고도는 3600m이고, P12 포인트에서 4km 벗어나 있었다.
 
나는 다시 Goal까지 완주하기로 마음을 가다 듬는다. GPS 한개는 이미 먹통이 되어버렸고, 골까지 거리는 약 17km 비록 늦은 시간이지만, Goal로 향해 출발한다...내 발 아래에는 여기 저기 큰 구름덩어리가 떠 다니고, 마치 비행기 안에서 구름을 보는 것처럼 정말 장관이다. 조금 전 암흑 속에서의 상황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고요하고 평온하다.
 
드디어! 멀리 Goal이 눈에 들어온다. 늦은시간 내 뒤에도 앞에도 다른 글라이더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13 번째로 Goal에  착륙 들어갔다. 그 순간!  마치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다 넘기고, 생환 한 것처럼 너무나 기뻤다. 지난해 호주에서 에바선수가 적난운에서 겪었던거에 비하면 별거 아니겠지만, 처음으로 겪었던 나로서는, 암흑속에서 에바선수가 격었던 심정을 조금이나 이해할 수가 있었다. 비록 우리 나라의 기상은, 외국 큰 대륙에서의 기상과는 강도 차이가 다르겠지만, 정말 그 위력을 감당 해보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알수도, 결과도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았고, 오늘 비행에서 커다란 교훈을 얻었던 것 같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오늘 나의 비행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 하면서... 나는 평생 잊지못할  895횟째 비행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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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삼(박광진) 2019.07.11 16:34
    와우...정말 실감나네여...
    작은 구름 및에서도 이런느낌이 나는데...
    상상만해도 무섭네여....일지보고 또 한번 내 자신을
    생각해 보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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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suk8 2019.07.12 00:01
    지난 주말 말씀하신대로 125페이지에 올려진 이 일지를 읽다가
    머리끝이 서는 느낌,
    얘기해주시던 그 비행이구나
    이런 극한 경험을 하고나면
    겸손해질 수 밬에 없겠구나.
    삶이 달리 보이겠구나 .
    우리가 하는 패러가 어떤 스포츠인가를
    단적으로 알게 해주는 일지였는데
    새로이 올리셨네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일지였습니다.